아흔세 번째 날의 기록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일기장 창을 열었다. 일상에 치인다는 핑계로, 혹은 이제는 담배 없이도 제법 살 만하다는 안일함에 빠져 나의 투쟁을 기록하는 일을 한동안 멈추고 있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금연일기를 다시 꺼내어 들게 된 것은, 잔잔하던 내 일상에 예기치 못한 커다란 파고가 덮쳐왔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했던 입찰에서 우리 회사가 탈락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결과를 확인한 순간, 마치 누군가 명치를 세게 때린 듯한 서늘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팀원들과 밤을 새우며 쏟아부었던 노력과 간절함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 지독한 무력감의 틈새를 비집고, 가장 익숙하고 파괴적인 유혹이 고개를 들었다. 자욱한 연기 뒤로 도망쳐 이 쓰라린 현실을 잠시나마 마비시키고 싶다는 본능적인 갈망이었다.
‘딱 한 대만 피우면 이 막막함이 조금은 가라앉지 않을까.’ 위험한 속삭임이 머릿속을 맴돌 때, 나는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그리고 화면 한구석에 자리한 앱 하나를 무심코 열었다. 나의 의지를 다잡기 위해 내가 직접 코드를 짜서 개발했던 '금연계산기 앱'이었다.


그 앱의 화면 위에는 WHO 기준에 따라 시각화된 데이터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카운트되고 있었다. 지난 93일간 참아낸 1,114개비라는 명징한 숫자, 절약한 금액 25만여 원, 그리고 무엇보다 되찾은 수명 204시간 22분. 특히 신체 회복 진행도를 보여주는 백분율 그래프와 WHO 기준 지표들을 보니, 나의 투쟁은 더욱더 가치 있는 것으로 다가왔다. 나를 다스리려 한 줄 한 줄 쳐 내려갔던 그 코드가 만들어낸 숫자들이, 역으로 거세게 흔들리던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 주었다.
나는 멈추어 섰다. 입찰 결과는 내 통제 밖의 일이었지만, 내 호흡의 맑음을 지켜내는 것은 온전히 나의 권리이자 책임임을 뼈저리게 자각했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나는 비즈니스에서의 패배를 넘어, 지난 93일간 스스로 만들어온 성취와 자부심마저 잿더미로 만드는 꼴이 될 터였다. 억지로 갈망을 억누르기보다 앱의 숫자를 가만히 응시하며 요동치는 마음의 파동을 관조했다.
시간이 흐르자 거센 유혹의 파도는 이내 잔잔해졌고, 그 자리에는 나를 지켜냈다는 깊은 자긍심이 남았다. 이 아찔한 위기를 넘기며 나는 깨달았다. 기록이 멈추면 마음의 방향키도 길을 잃기 쉽다는 것을. 내가 만든 계산기가 내 삶을 지탱하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듯, 활자로 남기는 이 일기 역시 나를 지키는 가장 훌륭한 방패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 한다.
금연일기 93일차,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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